쓰릴미
리차네이
너를 보고 있으면 코끝을 찌르는 불 냄새가 났다.
그 향취를 처음 맡았을 때 폐부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쾌감은 낯선 것이었고, 치기가 덜 자라 앳된 한 소년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교 시절의 짧은 불장난이 남긴 그슬림은 그 뒤로도 아주 오랜 시간 나를 따라다녔다. 손바닥만한 불꽃이 날름거리는 걸 보고도 겁을 먹고 주춤대는 멍청한 새끼. 네 모습은 장대한 화마가 일렁이는 풍경에 묻혀 금세 잊혔다. 그런 치졸함은 내 시야에 걸맞는 것이 못 되었다. 수통에 담긴 휘발유 냄새가 꽉 잠근 콜크 마개 사이로 새어나오고, 타다 남은 모포가 미완성의 형태로 그을린 모습만이 내게 남았다. 아버지의 손을 떠나 타지의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했을 때 나는 네게 작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모두 타고 남은 새카만 목조와 낡은 성냥갑에 작별했다.
그리움은 잊을 만하면 치솟았다. 벽난로에서 타닥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화마의 충동질에 귀를 틀어막고 등을 돌려앉았다. 담배를 시작하면서 불의 유혹은 항상 입가에서 타들어갔다. 점멸하는 독한 불씨를 쳐다보면서, 바싹 마른 목조에 그것을 흘리는 상상을 했다. 상상하던 것을 눈앞에 저지르기까지 겨우 나흘이었다. 황홀했다. 시야를 어그러뜨리는 열기에 동반하는 강한 탄내와 지독한 연기. 그러나 그뿐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를 만치의 열망과 아름다움이, 금방 사그라들고 마는 불꽃만큼이나 미약했다. 천장까지 아가리를 벌리는 불길의 프레임은 모든 색채를 잡아먹고 흑백으로 요동쳤다. 황홀경의 향취도, 숨이 답답할 만큼 독한 연기뿐이 없었다. 나는 참패에 절망했다. 처음 맛본 무력감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머리를 뜯으며 한참을 고민했다. 행복하다고 믿었던 순간의 기억을 밤마다 머릿속에서 수십 차례 재생했다. 수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았다. 그때 내 옆에 네가 있었다.
불이 모든 살아있는 것을 집어삼키는 동안, 손을 맞잡고서 생의 맥박을 느끼게 하는 동반자. 완벽한 목격자이자 영원히 함구할 공범자.
그런 사람은 너 말고도 많았다. 대학에서 안면을 튼 동급생들은 위험성이 컸다. 내 아버지가 나를 찾지 않도록 하는, 힘들게 쌓아올린 이미지와 원만한 사교 관계를 단번에 무너뜨릴 순 없었다. 불길을 보고 겁을 먹곤 비명을 질러 대던 싸구려 콜걸에게 수표를 쥐여주고, 아버지의 이름을 쫓아 내 수발을 자처했던 한 학년 선배의 목구멍에 돈다발을 처넣은 뒤에야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난 네가 필요했다. 그래, 너. 네이슨.
너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존의 입에서였다. 그 새낀 뻔뻔하게도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안부를 전하고, 네 이름을 입에 올렸다. 잊고 있었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옆에 있던 건 너였다. 코끝까지 미끄러진 멍청한 안경, 열과 습기로 렌즈에 뿌옇게 김이 서리면 흐릿한 시선으로 불이 아닌 내게 동경의 시선을 던지는 네가 있었다.
너를 생각하고 있으면 숨이 가쁘도록 내 그림자를 뒤쫓는 불 냄새가 났다.
내가 네게 돌아간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나는 널 필요로 했다. 너는 내 세계에서 필요악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널 사랑할 수가 없다. 널 사랑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네 무릎 위의 승리자였다.
개자식. 비열하고 추잡한 배신자 새끼.
나의 열망과, 신뢰와, 두려움과, 나약함을 너는 알고도 나를 기만했다. 네 옆의 날 우러러보는 체하며 결국 발밑까지 나를 추락시켰다. 내 눈앞에서 순진한 척 웃으며 날 가지고 놀았지. 미친 새끼, 난 네 새장 속의 카나리아도, 실에 달린 마리오네트도 아니다. 난 네 머리 위에서 언제고 널 내려다보고, 네 동경 어린 열망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것만이 내 자리였다. 그것만이 내 구원이고, 나를 숨쉬게 했으며, 널 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넌.
널 믿는 게 아니었어. 모자란 놈, 비겁한 자식, 내 아버지나 존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저열한 쓰레기! 널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내 실패를 인정한다. 넌 내 옆에 있을 자격이 없는 놈이니까. 내가 완전히 잘못 선택한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실패의 댓가는 이토록 참담하고 역겨운 배신이었다. 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말은 아직 내게 도달하지 않았다. 난 널 사랑한 적이 없다. 이 배신의 고통은 네가 내 완벽한 도전을 모두 어그러뜨린 데서 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난 내가 받은 만큼 그 고통과 무력함을 네게 되돌려 줄 것이다. 네게서 떠나리라, 그리고 이번엔 결코 다시 네게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러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으로 축축한 땀을 무릎에 적시면서, 나는 그 말을 한마디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꺽꺽거리며 목에 걸린 울음 같은 것만이 대신 애처롭게 터져 나왔다. 뿌옇게 시야가 흐리고 볼에 뜨거운 것이 흘렀다. 입 밖으로 내면 인정하고 말 것 같았다.
내가 너로 인해 이토록 슬프다는 것을.
'쓰릴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petty jealousy (0) | 2015.05.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