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폴레이
경위서
런던 경시청 외근형사국 소속
에릭 헤리츠
※ 경위는 육하원칙에 의거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본인은 전일 밤 9시경 스타일스 저택에서 일어난 사소한 해프닝에 대한 경위를 밝힘.
전일 6시경은 크리스티 부부의 초대로 디너 모임이 있었고 크리스티 부인의 책 출간과 관련해 본인을 비롯한 세 명의 손님이 자리했음. 식사를 끝내고 크리스티 씨가 잔업으로 자리를 비운 뒤 본인은 크리스티 부인 및 헤이스팅스 출판사의 뉴먼 씨와 간단한 다과를 하던 중이었음. 당시 식사에 초대받은 다른 한 사람, 일간지 기자 폴 뉴트런(이하 뉴트런)은 금일자 신문에 게재될 예정이었던 크리스티 부인의 인터뷰 준비를 구실로 응접실의 개인적인 사용을 허락받은 바 있음.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러함.) 본 경위서의 정상 참작을 위해 미리 밝혀두건대 뉴트런은 평소 행실이 반듯하지 못하고 지나친 특종 취재를 의도한 사생활 침해 및 명예 훼손 건의 전적이 있어 주변인 보호를 위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었던 인물임을 지적해두고자 함.
발단은 크리스티 부인이 갓 구운 과자를 대접할 목적으로 방학기간 동안 저택에 투숙 중이던 레이몬드 애쉬튼 군(이하 애쉬튼)을 찾으면서 시작됨. 부인은 하녀로부터 애쉬튼이 방에 없음을 전해 듣고 본인에게 서재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함. 애쉬튼은 평소에도 부인의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잠든 적이 많았으므로 본인 또한 의심 없이 서재로 향했음. 그러나 복도를 지나던 도중 본인은 의도치 않게 응접실에서 뉴트런과 애쉬튼의 대화를 듣게 됨.
당시 뉴트런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마주선 애쉬튼을 올려다보며 작가 수첩을 화제로 대화하고 있었음. 평소 두 사람의 관계가 고르지 못했음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애쉬튼이 일방적으로 뉴트런의 접근을 차단해 왔음을 아는 바 본인은 응접실 문 밖에서 지켜보기로 결정함. 이성적인 기술을 위해 당시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작성함.
뉴트런(이하 N) : 수첩이 작고 귀여워 잘 어울린다. 어디서 구입했는가.
애쉬튼(이하 A) : 아저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
N : 아저씨라는 호칭이 친근하지 못하니 형이라고 불러라.
A : 싫다. 나이가 많은데다 굳이 친근한 호칭을 사용할 필요를 느낄 수 없다.
N : 본인이 선물한 펜을 들고 다니는 걸 보니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A : 아직 써본 적 없다.
N :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돌려 달라.
A : 그건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의심할 필요 없이 일상적인 대화였음을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나, 본인은 당시 애쉬튼의 상태가 평소와 매우 달랐음을 분명히 하고자 함. 본인 또한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걸음걸이, 목소리, 냄새에 근거했을 때 애쉬튼은 취한 상태였음을 확인함. (잘못 기술한 것이 아님. 취한 것은 뉴트런이 아니라 애쉬튼이었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는 애쉬튼의 연령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함과 동시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이 명백했음. 그 이후의 대화는 본인이 지나치게 이성을 잃은 나머지 정확하게 서술하기 어려우나, 다음 상황에 대해서는 똑똑히 기억함. 비양심적인 뉴트런이 애쉬튼의 펜과 수첩으로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하였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들인 애쉬튼이 뉴트런의 옆자리에 앉음. 허나 뉴트런은 애쉬튼의 물건을 내주는 대신 다른 요구를 함.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의 애쉬튼이 뉴트런의 무릎에 올라앉고 뉴트런이 손으로 애쉬튼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분명히 근무지 외의 일이었으며 경찰의 지위를 내세우기 이전 충분한 절차와 증거 확보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을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응접실 안으로 난입해 (취조 및 구체적 상황 파악을 생략하고) 뉴트런의 후두부를 손으로 가격함.
직후의 상황은 본 문서의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문답 형식을 빌어 간단하게 서술함. 본인은 신속하게 애쉬튼을 방으로 돌려보내고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따뜻한 우유를 가져다줄 것을 하녀에게 지시함. 그 뒤 억울함과 통증을 호소하는 뻔뻔한 뉴트런과 대질하여 몇 가지 사실확인을 거침.
Q. 미성년자로 술을 마시게 한 불순한 의도가 무엇인가.
- 내가 마시게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서재에서 애쉬튼 군을 만났을 당시 취한 상태였다. 책장 뒤에서 바카디를 발견했고 호기심에 몇 모금 마셔봤다고 말했다. 불순한 의도라니 표현이 중립적이지 못하다.
Q. 서재에서 애쉬튼 군 혼자 술을 마셨다니 믿을 수 없다.
- 믿어야 한다. 자초지종은 나 역시 모른다. 애쉬튼 군은 평소에도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Q.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은 이유가 무엇이냐.
- 귀여워서 그랬다.
Q. 그 발언이 불순한 의도와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 순 억지다. 유도심문은 거부하겠다.
Q. 응접실에서 인터뷰 준비를 한다더니 서재에는 왜 갔느냐.
- (침묵) 일을 하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애쉬튼 군에게 저번에 빌려준 손수건을 찾으러 갔다.
Q. 애쉬튼 군이 올 줄을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들린다.
- (침묵) 그렇다.
Q. 잘못을 시인하는가.
- 죄송하다.
그 이후의 상황은 크리스티 부인이 등장해 뉴트런과의 차기 인터뷰 및 취재 약속을 모두 취소함으로써 마무리됨. 위의 사안으로 인해 저택 내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소음 및 공적 업무 방해로 판단한 크리스티 씨의 투철한 신고 정신으로 출동한 동료 경관들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를 표함. 그러나 휴일, 그것도 근무지 외에서 명백하게 발생할 우려가 있었던 사건이 미수에서 그치도록 기여한 데 대한 공을 인정해 정상 참작해주기 바람.
본인은 이번 사안으로 민간인, 그러나 명백한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한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공권력 남용과 과잉 대응의 건으로 본 경위서 작성의 처분을 받았음을 밝힘.
덧붙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처신하겠다고 밝힌 뉴트런 씨의 친필 각서를 별첨함.
Eric Heritz (서명)
문서번호 19261204